• 화개장터

    화개장터

    화개면 탑리 섬진강변에 있는 화개장터는 8·15 광복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 중의 하나로서 이곳에서는 5일장(1일, 6일)이 섰다.
    화개장은 섬진강의 가항종점(可航終點)으로서 돛단배가 들어올 수 있는 가장 상류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으로 인해 이곳에 대규모의 장터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지리산 화전민들은 고사리․더덕․감자 등을 가지고 와서 팔고, 전라도 구례 사람들은 쌀보리를 가져와 팔았다. 여수․광양․남해․삼천포․통영․거제 등지의 사람들은 섬진강 뱃길을 이용하여 각종 수산물을 가득 싣고 올라왔다. 그렇지만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 토벌작전 등으로 지리산 일대가 황폐해지면서 화개장도 함께 쇠퇴했다.

    화개장터는 김동리(金東里) 소설 ‘역마’의 무대이기도 하다. 1948년 김동리가 ‘역마’를 쓸 당시의 화개장터는 세월이 흐르며 사라지고, 지금 그 자리에는 상점 및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화개면사무소 앞쪽 화개교 옆에 1997년 새로 현대식으로 장터를 조성했다.

    현재 총 대지 면적 3,012㎡인 화개장터의 점포수는 야외 장옥, 구장옥, 난전, 좌판 등을 합쳐 100개가 넘는다. 이곳에서는 지리산과 섬진강 주변의 특산물인 야생차·둥굴레·더덕·오미자·천마·참게장·재첩 등을 취급한다. 주변의 식당에서는 산채비빔밥·도토리묵·참게탕·재첩국·은어회 등을 맛볼 수 있다.

    매년 4월 초가 되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10리에 걸쳐 벚꽃이 만발하며, 이때를 맞춰 화개장터 벚꽃 축제가 열린다. 화개장터 주차장에 쌍계사까지 걸어서 다녀오는 데는 2~3시간 정도 걸린다. 한편 5월의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 기간에는 화개장터 역마예술제도 열린다. 이는 김동리의 소설 ‘역마’를 주제로 하는 예술제로서 마당극과 판소리 공연 등이 펼쳐진다.

  • 칠불사

    칠불사

    지리산 반야봉 남쪽 해발 약 800m 고지에 자리 잡은 칠불사(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소재)는 삼국 시대 초기 김해 지방을 중심으로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가야(伽倻), 일명 가락국(駕洛國)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일곱 왕자가 이 곳에 와서 수도를 한 후 모두 성불하였다고 해서 칠불사라 불리고 있다.

    지리산 반야봉 남쪽 해발 약 800m 고지에 자리 잡은 칠불사(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소재)는 삼국 시대 초기 김해 지방을 중심으로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가야(伽倻), 일명 가락국(駕洛國)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일곱 왕자가 이 곳에 와서 수도를 한 후 모두 성불하였다고 해서 칠불사라 불리고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와 『동국여지승람 하동지』등에 의하면 수로왕은 서기 42년에 태어났으며 인도 갠지스강 상류지방에 5세기부터 있었던 태양왕조 아유다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아들여 10남 2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 거등(巨登)은 왕위를 계승했고 차남 석(錫)왕자와 삼남 명(明)왕자는 모후의 성씨를 따라 김해 허(許)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나머지 일곱 왕자는 출가하여 허황옥의 오빠인 인도 스님 장유보옥(長遊寶玉)선사를 따라 처음에는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하다가 의령 수도산, 사천 와룡산 등을 거쳐 서기 101년 지리산 반야봉 아래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더욱 정진, 수로왕 62년(서기103년) 음력 8월 15일 모두 성불이 되었다 합니다. 이들 일곱 왕자들인 혜진(慧眞), 각초(覺初), 지감(知鑑), 등연(等演), 주순(柱淳), 정영(淨英), 계영(戒英)은 성불한 후 각각 금왕행불(金王行佛), 금왕향불(金王香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공불(金王空佛)로 불리었다.

    일곱 왕자의 성불 소식을 들은 수로왕은 크게 기뻐하여 국력을 기울여 그곳에 큰 절을 짓고 일곱 부처가 탄생한 곳이라 해서 칠불사(七佛寺)라 불렀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다고 하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372년) 보다 약 270여년 앞선 기록입니다. 『372년 북방전래설』은 중국을 통해 전해진것임에 반해 이곳은 가락국이 바다를 통해 인도로부터 직접 불교를 받아 들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어 이와 같은 창건 설화를 지닌 칠불사는 종래의 북방 불교 전래설과는 또 다른 남방 불교 전래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학문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쌍계사

    쌍계사

    쌍계사는 723년(성덕왕 23)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 보물 제500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된 명부전 등 다양한 문화재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쌍계사를 떠올리면 쌍계사 벚꽃길을 떠올리게 된다. 전남 구례읍에서 21km 지점, 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개리에서 운수리까지의 6km 구간에는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어 봄철이면 벚꽃 구경객으로 붐빈다. 그곳에 쌍계사가 있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에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스님이 창건하였으며, 처음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그 후 문성왕 2년(840년)에 진감선사가 대찰로 중창시킨 후 887년 정강왕이 선사의 도풍을 앙모하여 ‘쌍계사’로 개칭하였다.

    지금의 절은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인조 10년(1632년)에 벽암대사가 다시 세운 것이다. 봄철의 벚꽃이 특히 유명하며 계곡의 맑은 물, 기암과 고목들이 어울려 빼어난 경승을 이룬다. 경내 볼거리로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친필 쌍계석문,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47호)를 지나 북쪽 500m 거리의 국사암 뜰에 천연 느릅나무(사천왕수), 또한 동북쪽으로 2km 남짓거리에 청학봉과 백학봉의 두 계곡을 끼고 있는 높이60m, 폭3m의 불일푹포(지리산 10경 중의 하나) 등의 이름난 곳이 있다.

    한편 쌍계사는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신라 흥덕왕3년(828년)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처음으로 차나무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남쪽 줄기 쌍계사 일원에 심었다고 하며 일주문 못미쳐 차시배 추원비가 세워져 있으며 마을 차밭에도 차 시배지 기념비(도기념물 제 61호)가 있다.